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담화를 갖고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습니다.
계엄사령관에 4성 장군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하였습니다.
계엄은 전쟁이나 국가 비상사태 시 군이 행정과 사법 권한을 맡아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계엄이 선포되었으며, 그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여수·순천 사건 (1948년 10월 21일 – 1949년 2월 5일)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에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는 해당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계엄령이었습니다.
2. 제주 4·3 사건 (1948년 11월 17일 – 1948년 12월 31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1948년 11월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계엄은 약 한 달 반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3. 한국전쟁 기간 (1950년 7월 8일 – 1953년 7월 27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계엄은 여러 차례 선포되고 해제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계엄이 유지되었습니다.
4. 부산 정치 파동 (1952년 5월 25일 – 1952년 7월 28일)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야당 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체포했습니다.
5. 4·19 혁명 (1960년 4월 19일 – 1960년 6월 7일)
1960년 4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서울 등 주요 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6.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 1962년 12월 5일)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이후 경비계엄으로 전환되어 1962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7. 6·3 항쟁 (1964년 6월 3일 – 1964년 7월 29일)
1964년 6월,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격화되자, 정부는 서울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8. 10월 유신 (1972년 10월 17일 – 1972년 12월 13일)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9. 부마민주항쟁 (1979년 10월 18일 – 1979년 10월 27일)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자, 정부는 해당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10. 10·26 사태 및 12·12 군사반란 (1979년 10월 27일 – 1981년 1월 24일)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자, 정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12·12 군사반란으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고, 1980년 5월에는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으며, 1981년 1월에 계엄이 해제되었습니다.
이러한 계엄 선포는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때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 시기에는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계엄의 선포와 운영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민주주의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들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